설교말씀

2020-12-6 "우리가 가진 자유를 위하여"-(갈2:1~5)
2021-03-10 22:08:59 지음교회 조회 1530

201206-주일낮예배(갈라디아서 강해4)

 

우리가 가진 자유를 위하여

◈ 갈 2:1~5 ◈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자유와 통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몇 달 전에는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이유로 정부의 규제에도 집회를 벌여서 코로나가 유행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유를 어떤 이유에서든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그만한 댓가와 책임이 따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며 누리는 참된 자유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위반되거나 탈선되는 명령이나 교리는 거부할 양심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에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다시 방문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바울의 노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고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이방에 전한 복음을 위해

우선 바울은 자신이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밝힙니다. 여기서 14년 후라는 것은 그가 회심 한 후의 14년 만에 방문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 방문이 바울의 몇 번째 방문이었을까요? 갈라디아서 1장에서 1차 방문을, 사도행전 11장에 2차 방문을, 15장에는 3차 방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3차 방문 중 일반적으로 3차 방문으로 보는데, 바로 49년에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 참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유력한 자에게 사사로이 제시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공식적인 예루살렘 공의회는 아니라 사도행전 11장의 기록처럼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부조금을 들고 간 것이거나, 2차와 3차 예루살렘 공의회 전에 다른 방문이 있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사건으로 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방문한 이유를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고 밝힙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에 간 이유가 부조금 전달이나 공의회 참석이나 자신의 사역에 대한 해명 또는 자신을 사도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나, 유대주의자들의 협박이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자신이 전한 복음을 제시하였고, 심지어는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제시했습니다. 성경은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복음을 제시한 것만 있는데, 복음을 제시하였고, 유력한 자들에게는 사사로이 한 별개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제시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이 이러하다고 검사를 받거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전한 복음을 제시하므로 자신의 복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드러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유력한 사도들의 확인을 받을 만큼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복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한 복음은 사도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검증받고 배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이 전한 복음이 이상이 있다면 유력한 자들이 공의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금하였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력한 자들은 공식적인 공의회에서 그가 전파한 복음이 아무런 문제없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결정만 했습니다(행15:20).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복음은 모든 사도가 가르치는 것과 동일한 복음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굳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이 전한 복음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수고하는 모든 행위가 헛되지 않고, 수고하여 전한 복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이 전하는 복음과 다르지 않음을 그들이 인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유대주의자들의 여론이나 강력한 주장에 의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바울이 전한 복음과 베드로 등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다르지 않고 완전히 똑같음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행한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른 복음을 위하여 달음질하시는 지음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을 위해 어떤 수고까지 하셨습니까? 어떤 수고든지 간에 복음을 위한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바울의 달음질하는 행위나 달음질한 복음이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여러분이 복음을 위해 하는 모든 수고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복음을 위해 수고합시다.

 

2. 거짓 형제들의 속셈을 알라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그가 전한 복음을 전할 때에 많은 방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복음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예루살렘에 함께 데리고 간 디도를 통해서입니다. 디도는 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헬라인 출신 그리스도인입니다.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정받느냐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진짜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디도를 향하여 할례를 강요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력한 자들 곧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디도가 헬라인임을 알면서도 그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즉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던 주체는 바울이 아니라 유력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이 디도의 할례 문제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으므로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유력한 자들이 왜 디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가만히 들어온 형제들 때문이었습니다. 가만히 들어왔다는 표현은 흔히 밀수처럼 아무도 모르게 불법적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교회에 속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 계시로 된 참된 복음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의 전통과 가르침을 중시하는 어리석은 자들로서 복음의 핵심을 모르고, 다른 것으로 바꾸니 제대로 된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거짓 형제라고 표현합니다. 거짓 형제는 형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형제인 척 위장하는 가짜입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자들이야말로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 곧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가만히 몰래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종으로 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종으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몰래 들어온 사탄의 졸개로서, 성도들을 다시 사탄의 종으로 삼고자 온갖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몰래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린 것으로 비유하며, 이들을 추수 때에 거두어 불사르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마13:24~30). 그러므로 이들의 모습은 복음과 상관없는 것이며, 겉모습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리를 거짓으로 물들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믿음에서 다시 종으로 삼으려는 이단을 주의하시는 지음가족 여러분!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가르침을 주의합시다. 그리스도인 같으나 거짓형제 곧 거짓 그리스도인이며,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바꾸어 종으로 삼으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혹시 자신이나 남에게 하나님이 지우지 않는 짐을 지우지는 않는지를 돌아봅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자

그럼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인 유대주의자들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공인된 것입니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그들의 주장을 전면으로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참된 자유가 있음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요8:32). 주님이 우리를 죄와 허물에서 건져주시고, 죄와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까지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에서 우리를 끌어내려 다시 종으로 삼기 위해 사탄은 거짓형제들을 가만히 몰래 교회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활동하더라도 주의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거짓형제들의 가르침을 잘 분별하도록 하셔서 그들에게 속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거짓 형제들에게 한 번도 복종하지 않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들의 유혹이나 압력에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과 타협하고 한 발짝 양보하면 그것은 복음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위협하고, 협박하고, 모함하더라도 그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기를 기뻐했습니다. 만약 그들과 타협하고 양보하면 갈등을 피하는 지혜로운 행동처럼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복음을 바꾸는 것이 됩니다. 거짓형제에게 복종하는 것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 복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강요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한 것은 우리 가운데 복음의 진리가 있게 하려 함입니다. 여기서 “항상 있게 한다”라는 의미는 그곳에 항상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미 우리 속에 복음의 진리가 있는데,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거짓형제의 속임수에 넘어가거나 복종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에도 종종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에 속아서 자유함에서 다시 종의 자리로 떠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자유가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이단에 빠진 이유가 바로 그들에게 굴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의 순수성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단은 처음에는 별반 다른 것 같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끝은 그리스도에서 멀어지게 하며, 다시 종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고 계신 지음가족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사탄의 유혹과 위협,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가 떠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음을 기억하고, 항상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참된 자유를 위하여 유대주의자들의 위협과 속임수에 속지 않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순수한 복음을 위해 기꺼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력한 자들과 만나 자신이 전한 복음이 참된 복음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받은 계시의 말씀임을 증거했고, 그것을 확인받았습니다. 비록 거짓 선생들이 이방지역에서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는 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침해하고 다시 죄와 율법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으며, 끝까지 복음의 순수성을 지켰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자유를 끝까지 지키기를 원합니다. 가만히 들어온 이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신 참된 자유를 만끽하면서 주를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렇게 살기 원하시는 분들은 다함께 찬송가298장으로 주신 말씀에 응답찬송을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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